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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국제법

국제법 : 전쟁의 불법화

by 킴졔 2022.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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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불법화

 

- 제1차 대전 이전의 전쟁  

근세 초기의 국제법학자들은 정전론을 주장하였다. 정전론은 정당한 원인에 입각한 전쟁만이 합법적이라는 것.

18세기 중엽 이후 무차별 전쟁관이 정전론을 대신하여 등장. 무차별전쟁관에 의하면 전쟁에 있어 누가 정당한 전쟁 원인을 가지는지를 판정할 수 없고 교전자 쌍방이 모두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1832년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국가정책 수단의 하나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철학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데 책임이 있다고 평가된다.

 

- 전쟁불법화

 

 1907년 계약상의 채무 회수를 위한 병력 사용의 제한에 관한 조약 (포터 조약) 

이 협약에 의해 전쟁이 실정법상 최초로 금지되었다. 즉, 이 협약은 채무국가가 중재에 응하지 않는 경우 등 외는 병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였다.

 

국제연맹 규약

국제연맹 규약은 일정한 경우의 전쟁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전쟁을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규약 제12조는 중재판정이나 이사회의 조사에 분쟁을 회부한 후, 그 문제의 판정이 내려진 다음 3개월까지는 전쟁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나 3개월 지난 후에는 이론상 전쟁이 가능하다.

 

1928년 부전 조약 (파리조약)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여 체결한 다자조약. 국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전쟁과 국가정책 수다으로서 행해지는 전쟁을 금지. 이 조약은 침략전쟁을 금지한 것이며 연맹 규약보다 전쟁의 불법화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연맹과는 별도로 존재. 지금도 유효하다.

 

1932년 스팀슨 독트린

미국은 일본의 만주침공에 대해 켈로그-브리앙 조약 위반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법적 효과를 유효한 것으로 승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이 선언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스팀슨이 한 것으로서, 스팀슨 독트린이라고 불리게 됨.\

스팀스 독트린은 국제법상 위법행위의 결과로 성립된 만주국에 대한 불승인주의로서,1932년 3월 11일 국제연맹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승인되었다.

스팀스 독트린은 후에 뉘른베르그 재판소와 동경 재판소에 의해 인정되었다.

 

 UN헌장

UN헌장은 제2조 3항에서 회원국은 국제분쟁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할 것을 규정.

제33조 1항에서 주선, 중개, 중재, 사법적 해결 등 분쟁의 평화적 해결 수단과 해결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2조 4항은 무력행사 및 무력에 의한 위협을 타국에 가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며, 동 조항은 전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력행사 전체에 적용된다.

그러나 헌장 제51조는 예외적으로 자위권의 발동에 의한 무력사용을 허용한다.

- 전쟁의 범죄화

전쟁이 불법화함에 따라 불법 전쟁을 저지른 사람은 침략범죄를 범한 사람으로 처벌된다. 뉘른베르그 재판과 동경 재판에서는 '평화에 반한 죄'로서 개인을 처벌하였다.

현재의 ICC 규정도 관할 대상 범죄로서 침략범죄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 범죄 정의와 관할권 행사의 조건에 관한 규정이 채택되지 않아 ICC가 실제로 관할 건을 행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국제 형사재판소 규정상의 침략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진행 중에 있고, 2009년 2월에는 침략범죄의 정의와 관할권 행사 요건에 관한 초안이 ICC의 당사국총회에서 성안 되었다. 

 

집단적 안전보장과 강제조치

 

- 국제연맹 규약

규약 11조에서 "전쟁 또는 전쟁위협은 어느 연맹 가맹국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지를 불문하고 연맹 전체의 이해관계사항이다"라고 하여 집단 안전보장의 원칙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미국이 가입하지 않았고 독일, 이태리, 일본은 탈퇴, 소련은 제명당하여 보편성을 갖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 UN헌장

UN의 집단 안전보장제도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첫째, 침략의 존재를 인정하고 둘째, 침략을 실력으로써 배제하기 위한 강제조치를 취하는 2단계 조치에 의하여 이행된다.

 

침략 등의 존재 인정 : UN헌장 제7장은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행위에 관한 조치를 규정하고 제6장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하였다. 제7장 제39조는 "안전보장 이사회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권고하거나 또는 제41조 및 제42조에 따라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라고 규정한다. 안보리는 침략행위뿐만 아니라 평화의 위협, 평화의 파괴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침략행위 등의 결정에 5대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침략행위 등의 존재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강제조치를 취할 수 없다.

 

강제조치 : 헌장 제40조는 안보리가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41조는 안보리가 경제관계 및 외교관계의 단점을 포함하는 비 국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42조는 제41조의 비군사적 조치가 불충분할 경우에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43조는 특별협정을 체결하여 안전보장 이사회가 이용할 수 있는 UN상비군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특별협정은 체결되지 못하였고, 제43조가 예정하였던 UN상비군은 설치되지 않았다.

 

자위권 : 헌장 제51조는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 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회원국이 취한 조치는 즉시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된다. 또한 이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조치를 언제든지 취한다는, 이 헌장에 의한 안보리의 권한과 책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였다.
•예방적 자위권 : 예방적 자위권은 현재 UN헌장상 인정되는가. 1842년 캐롤라인호 사건에서 미국의 웹스터 국무장관이 밝힌 엄격한 기준하여 허용될 수 있다. 즉 예방적 자위권은 필요성이 긴급하고, 압도적이며 다른 수단을 선택할 여지나 숙고할 시간이 없을 때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UN헌장의 영어본이 실제 무력공격이 발생하였을 때 자위권이 허용된다고 규정한 반면, 영어본과 동등하게 정본인 프랑스어본은 실제 무력침략이 발생했을 때 자위권이 허용된다고 함으로 예방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위권의 한계 : UN헌장 제51조상 자위권은 안보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행사할 수 있으며, 자위권에 의한 조치는 안보리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 자위권에 의한 조치는 안보리의 권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안보리가 자위권에 의한 조치와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한국전쟁 : 북한의 남침에 대해 안보리는 소련이 결석한 가운데 북한 당국의 무력공격을 평화의 파괴로 인정하여 즉시 정전, 북한 병력의 퇴거, UN 가맹국은 UN을 원조할 것 등을 결의하고 한국에게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군대를 제공할 것을 가맹국에게 권고하였다. 소련은 안보리에 복귀해 모든 한국관계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전의 결의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소련의 결석은 거부권 행사라는 주장이 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이후 결석은 기권으로 보게 되었다. 헌장 제28조는 안보리 이사국에게 기구의 소재지에 대표를 항상 둘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소련의 결석은 제28조 위반이라는 주장이 유력한 논리였다. 그 후 소련이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자 UN총회에서는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를 채택하여 한국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였다.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 합법성 : 그 후 UN에서는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가 합법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었다. 평화유지 기능이 안보리의 전속적 권능인가 여부, 헌장 제11조 2항 상의 행동이 강제조치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권고조치도 포함하는가의 여부.

 

특정경비 사건, 1962년 ICJ권고적 의견 : 콩고와 수에즈 운하에서의 평화유지 활동에서의 평화유지 활동 비용에 대해 프랑스와 소련 등이 이 비용은 UN헌장 제17조 2 항상 회원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아니므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하여 분쟁이 발생하였다. UNEF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무력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캐나다의 외무장관이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에 따라 평화유지군인 UNEF를 파견할 것을 주장하여 창설되었다. 1956년에서 1967년까지 UNEF는 적대행위의 중단을 임무로 하였고 이모서 무력분쟁이 중단되고 캐나다의 외무장관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ICJ는 권고적 의견에서 이 경비가 UN헌장 제17조 2항 상의 비용이라고 판정하였다. 소련은 헌장 11조 2항 조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안전보장 이사회에 회부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조치는 안보리의 독점적 권한이라고 주장하였다. ICJ는 조치는 헌장 제7장 상의 강제조치를 의미하며, UNEF와 ONUC는 평화유지 활동이기에 헌장 위반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의견은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판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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